[책마을] 현실 딛고 나아가는 여성 3代 이야기

입력 2020-06-18 18:17   수정 2020-06-19 03:05

공상과학소설(SF)부터 순문학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은 소설가 정세랑이 우리 시대의 현실을 단단히 딛고 나아가는 여성들을 담은 소설로 돌아왔다.

그가 《피프티피플》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는 6·25전쟁의 비극을 겪은 뒤 새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와 명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해림 등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다. 작가는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 가족이 단 한 번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나는 상황을 소설의 주된 플롯으로 설정해 현대사의 비극과 이 시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세상의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그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을 “한국 사회를 감아도는 따가운 혐오와 공기에 대한 긴 토로이자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고 소개한 것도 이 같은 의미를 관통한다.

소설은 TV토론에 출연한 심시선이 제사 문화를 강경하게 거부하는 발언에서 시작된다. 심시선이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가계 구성원들은 이런 그의 뜻을 따른다. 심시선이 죽은 지 10주기 되는 해에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서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로 한 것이다. 제사 방식은 특별하다. 각자 자유롭게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과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오는 것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심시선과 연결된 가족들은 그를 기리는 특별한 제사를 위해 하와이를 여행한다. 그에게 선물할 물건과 추억을 찾으면서 조금씩의 아픔과 상처를 지닌 자신들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각자 성장해 간다.

심시선과 그의 가족들은 부조리와 불합리에 소리낼 만큼의 강단과 세상을 예민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연약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일그러지고 오염된 세상의 모습을 설명할 언어를 찾아나서고, 또 다른 손녀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 괴롭힘을 당해도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심시선이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바람대로 자식들은 올곧게 살아간다.

소설은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을 통해 특별할 것 없는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져 사는 새 시대의 모습을 희망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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